지난주 주말에 현충일을 맞아 서대문형무소에 역사관에 다녀왔다!
저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오고나서 도슨트의 중요성에 대해서 너무나 느끼는 점이 많아
이번에도 같은 분께 설명을 들었다 뭐든 알고 봐야 보이고, 더 이해가 쏙쏙 된다
혼자 갔었다면 보고도 몰랐을 많은 이야기들을 해설을 통해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 그대로는 기억안나지만 주절주절 쓴 오늘의 포스팅 대부분은 쌤이 해주신 이야기~!!

주차공간이 넉넉한 편이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독립문역 5번출구와 아주 가까워서
접근성이 좋았다!

표는 입구 옆에 있는 자동발권기에서 발권하면되구,
대인 기준 3천원, 어린이는 1천원~!
현충일 주말이라 그런지 몰라도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님, 어르신들이 굉장히 많았다
나도 언젠가 아이가 생긴다면 주말에 집에서 쉬고싶어도
아이와 함께 역사적인 공간에 방문해서 스스로 생각해보고 배울 수 있게 해주는 어른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았다

송수신기를 받고 ~ 내부로 들어갑니다아

이 날은 현충일을 맞이하여, 내부에서 호국음악회를 하고있었다
웅장한 배경음악이 깔리니 더욱 비장해지는 마음....!

현재 서대문형무소 건물 부지도 굉장히 넓지만 예전엔 독립문있는 쪽부터 반대쪽 주차장끝까지였다고 한다
얼마나 커다랗게 형무소를 지어놓은건지....... 어휴

먼저 들어갔던 역사전시관 !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부터 1987년까지 존재하였는데
1905년 을사늑약으로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외교권을 빼앗겼고, 일본은 한국을 정치적으로 제압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1910년에 일본은 한일강제병합으로 우리나라를 강제로 일본제국에 병합시키고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1908년에 세워진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 그 이전부터 경성감옥이라는 명칭으로 우리나라를 서서히 탄압해왔으며 일본의 침략에 맞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가두고 고문하였고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서대문형무소는 존재하였다.
광복이후에는 반독재 민주화운동, 좌우익의 이념 등 독재정권에 의해 조작된 사건에 의한 피해자들이 수감되고 사형되었다.
1987년 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민주화운동가 또한 정치범 수용소라는 명목으로 수감되었던 곳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1987년에 88올림픽을 앞두고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되며 더이상 형무소로서 사용되지 않았다고한다.

설명을 들으면서 나의 무지함을 다시한번 느꼈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에 존재했던 곳 이라고 생각했는데 광복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함을 가지고 고초를 겪었던, 정말 마음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었다.

해설을 들으면서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되었고
잘못 생각하고 있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다시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 중 특히나 기억에 남는 부분은
한국인을 도와줬던 일본인도 있었고, 또 한국인들 더욱 아프게 했던 한국인들도 있었다는 설명을 해주시면서 일반적으로 서대문형무소를 떠올렸을 때 "일본은 나빠" 라고 떠올리기 십상인데 해당 국가 사람 모두를 마냥 나쁘다고 생각할 게 아니고 뭐가 맞고 틀린지, 옳고 그름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 또한 서대문형무소를 떠올리면 "나쁜 일본사람들" 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물론 다수가 나쁜넘들이긴 했지만) 편협한 사고였다는 생각이들었다.
아이들도 많이 방문하는 공간이고, 일제의 만행들에 대해서 듣다보니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하게 될 수 밖에 없는데 이렇게 설명해주시는 부분이 너무 좋았다
(내가 말주변이없어 설명해주신 부분에대해 이렇게까지밖에 말을 못해서 안타깝따....^^..)

기억의방 추모하는 방에서는 그 시절 수감카드에 기록된 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들어선 순간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안타깝고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알고계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알지못하는 분들도 수없이 많다는 것..
일제가 수감카드기록을 위해 사진을 찍는 그 순간에도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모습을 보며
굳은 의지와 결의가 보였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예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목재

지하에 있는 고문실에 갔을 땐 나도모르게 울컥하고 먹먹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 어떻게 나라를 지켜내려는 마음을 먹으셨을까 십분 남짓하게 있는 그 순간에도 나는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인간으로써는 떠올리기도 힘들 고통을 겪으며 독립운동을 하신 숭고한 정신에 감사하면서도 부끄러운마음이 들었다.
가슴아픈 그 시대를 이겨온 선열들의 희생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어야하는데... 생각이 많아진다

이 때 이뤄진 고문의 70%는 한 사람이 만들었다고하는데 바로 대한민국의 경찰이자, 고문귀신으로 불리던
친일반민족행위자 노덕술이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끔찍한 고문들을 만들어내고 해방이후에도 치안기술자로 인정받아 훈장을 세개나 받은 끔찍한 사람(사람이맞나)
이런 노덕술의 제자인 박처원과 그의 제자인 이근안. 여기서 제자는 고문 제자이다.
지난겨울 꼬꼬무를 보면서 이근안에 대해 알게되었다
고문기술자라고 불리던 이근안은
어떤 외상도 남기지 않고 죽을만큼 아프지만 죽지않을 고통을 주었던 대공 경찰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간첩이라는 누명을 씌워 고속승진하고
고문키트를 가지고 다닐만큼 끔찍한 고문들을 시행해놓고
아직도 살아있으면서 뻔뻔하게 자서전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열고 목사가되어 종교적으로 회개를 했다고 하는 이 사람
(사람이맞나2) 생각할 수록 화가난다.

수감자들의 형량과 노역의 강도에 따라 밥 중량도 다르게줬다
실제로는 정해진 양보다도 적고, 콩껍질, 돌 등 먹지못하는 것들이 많이 섞여있었다고한다...

감방의 복도

여러갈래의 감방복도들과 그 안에 수많은 감방들


3평 남짓한 감방에 7명씩 수감되는것이 원칙이나(이 원칙 또한 다른나라에 비해 우리나라 감방의 밀도가 높은 편 이라고 한다)
한 방에 3-40명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고한다. 커다란 똥간 2통과 함께
누워서 자는 것이 불가능해서 돌아가면서 자거나 지그재그로 누워자고 그러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일도 많았다고...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도 못하겠고 독립운동을 위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너무 들었다
솔직히 나라면 진짜 못할 것 같다
너무나 대단하시고 감사하고 또 감사한마음


제 1 사형장 터
그 전까지는 사형장으로 사용되었던 게 밝혀지지않아 발견된 지 5년정도밖에 안되었다고한다


한센병 환자들을 모아두었던 수감시설과

외부에 추모비가 설치되어있어, 수감자들을 추모하는 공간도 있었다


그리고 사형장 앞에서 사형수들을 지켜봤을 통곡의 미루나무
상상만해도 마음이아프다..... 왼쪽엔 아기나무, 오른쪽 누워있는 나무가 엄마나무라고한다.
1997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선고는 해도 집행은 되지않아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 이라고 하는데
평소 불의를 보면 화부터 나버리는 나는 '저런놈들은 사형 시키는게 맞지않나' 하는 생각을 해오곤했다
해설을 들으면서 선생님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사형을 집행하며 누군가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일을 해야한다는 것,
이로서 또다른 피해자가 생긴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처음해보았다.
사형이 맞다 틀리다는 말이 아니라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함께 생각해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지게 해주고
혼자 방문했던 나도 들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관점과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이번 해설을 들으면서 많이 느꼈던 감정이었다. 해설최고

재소자들이 운동했던 시설. 격벽장이라고 한다
재소자들의 인권에 대해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운동시설이라는데
이 좁은데서 어떤 운동을 하려나 싶었다

선생님이 말씀주시길 약간의 뜀박질정도 했다구...
처음 가봤던 서대문형무소는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인 '무섭다'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너무 넓었고, 그만큼 많은 인원이 수용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고
사람들에게 '저기 들어가면 못나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서 놀라웠고
재소자가 감시자의 유무를 판단하지 못하도록 조명 조도를 조절하고, 밥을 줄 때도 죄질의 정도에 따라 차등해서 준 것, 고문실에 취조실과 임시대기실을 나란히 두어 고문과정을 들을 수 있도록 한 것 등
치밀하고 치졸했던 일제의 만행들, 가담했던 친일파들의 이야기를 듣고 괘씸하고 화가났다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해서 아이들보다 더 경청해서 듣는 어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주려는 모습이 너무 보기좋았다.
슬프고 아픈 역사를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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